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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신학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했습니다.]**

**[김인찬 신학 요약자료입니다]**

*최초로 공개된 이론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합니다. 많은 성원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1) 안식일은 문자적으로 안식일 날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다. 이스라엘이 지킨 안식일 성취는 예수가 죽고 안식 후 첫날 부활함으로 구약의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성취한 것이다. 예수는 6일째 날에 안식하시고 7일째 부활한 것이다.(안식 후 첫 날 부활했다는 증거는 사복음전체에 걸쳐서 모두 기록되었다)

2) 십일조 성취

구약의 십일조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이미 성취되었다.
예수의 부활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백성이지만 예수의 부활이후에는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백성으로 새롭게 구별된다. 십일조는 장자와 장자지파가 얻었으며 또한 고아와 객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러한 원리는 신약의 헌금으로 대치된다.

예수의 부활은 모든 신약의 성도들을 세상에서 구별한 것이며 그들의 재산을 구별한 것이다. 그들의 재산이 바로 구약의 십일조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헌금을 드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3) 요한 계시록

계시록 5장부터 시작되는 일곱 가지 인봉된 책은 다니엘서에서 인봉된 책과 같은 것이며 계시록 11장까지 열어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계시록 12장부터는 요한에 의해서 인봉된 책이 다시 계시되고 있는 것이다. 12장부터 시작되는 요한에 의해서 다시 계시되는 것은 좀더 자세히 풀어서 계시되는 것으로 구약의 인봉된 책을 다시 예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에 의해서 밝히 드러났듯이 구약에서 다니엘에게 주어진 인봉된 책은 요한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밝히 예언되게 된 것이다. 그것이 12장부터 끝장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요한 계시록이 주어진 목적이다.(십사만 사천은 이스라엘의 구원받은 총수)

4)구약의 여호와는 성부이며 그 안에 성자가 포함되어있었다.

구약의 여호와는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포함된 이름이다.
성자는 성부의 품속에 있었다. 여호와의 품속에 있었다가 신약시대 육체로 입고 오신 여호와의 말씀인 여호와는 예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여호와는 성부를 가리키는 이름이면서 동시에 성자가 그 안에 포함되어져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먼저 성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아기를 밴 엄마를 부를 때에 그 엄마의 이름을 부르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5)성경적인 이원론과 세상에 나타난 세 가지 질서와 신분

성도들의 두 신분 육적인 신분과 영적인 신분 그리고 하늘의 성직과 땅의 직분 또한 육체의 질서와 영적인 질서로 성경적 이원론으로 접근(교회는 육적인 질서가 아닌 영적인 질서 육적인 질서는 세상의 질서로 국가와 사회) 하늘과 땅의 구분은 육체와 영으로 구분된다.

영의 질서는 신과 관계되며 육의 질서는 인간 세상에 적용되는 질서로 원초적인 질서와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질서로 구분된다. 원초적인 질서는 가족관계이며 남여 노소의 질서이다. 그 외에 사람들이 만든 질서는 왕정정치 봉건 정치 민주정치 등이다.
교회는 영의 질서에 속하며 성직도 영의 질서에 속한다. 정종분리가 성경적이다.

(세 가지 질서와 세 가지 신분)

a.원초적 질서: 가정의 질서와 육체의 질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신분인 가정의 질서와 남여노소의 질서

b.국가적 질서: 사회적 질서와 국가적 질서
국가의 시민과 직업 같은 신분인 후천적 질서

c.영적인 질서: 영적인 두 질서와 두 신분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종

6)구약시대 죽은 사람들은 모두다 음부에 있었다. 낙원은 예수의 죽음으로 성취되었다.

구약에서 죽은 사람들이 낙원에 있었다는 성경적 근거가 구약성경에 전혀 없다.
성도가 들어갈 낙원은 예수로 처음 준비된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서 밝히듯이 예수는 낙원이라는 처소를 준비하기 위해서 죽음으로 달려갔으며 그리고 그는 구약의 성도들을 낙원으로 이끌고 하늘에 먼저 올라갔다. 그 후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 때부터 신약시대 죽은 성도들도 영혼으로 낙원에 직접 오르게 된 것이다.

7)사람인 예수는 인성과 신성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신격과 사람의 인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두 인격이 아닌 한 신격이라는 영이 있으며 인성이라는 사람의 혼과 육을 취했다.

8)창세전과 구약성경에서 삼위는 모두 영적인 존재로 존재했었다.

성부도 영적인 존재이며 그 성부의 말씀도 영적인 존재이며 성령도 성부의 영으로 영적인 존재이다. 성자는 성부의 말씀으로 영으로 존재했으며 성부의 영 안에 있었다. 본질적 본체이다. 성부만이 모든 영광을 항상 홀로 받는다. 성자는 홀로 받는 자가 아니며 성부와 함께 영광을 얻는다. 성령은 성부의 영으로 영광을 받는 주체가 아니다.

9)교회 정치는 교황정치도 개신교의 의회정치도 아닌 초대교회 감독정치가 성경적이다.

초대교회의 감독은 지역의 감독이었고 역사적으로 근거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범위는 장로들로 다스려졌고 집사도 있었다. 지역 혹은 도시지역을 담당한 감독의 특징이 있었다. 그러므로 안수의 원리로 한 사람이 한 지역을 감당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0)기도를 세 가지로 이해하였다. 영과 영혼과 영혼육의 기도로 구분된다.

1)영혼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영을 중심으로 하는 영의기도(방언기도)가 있다.
2)영혼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영혼을 중심으로 하는 영혼의 기도가 있다.(묵상기도)
3)영혼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영혼과 육체를 모두 동원해서 하는 기도가 있다.(통성기도)

(영혼육의 처소의 개념)

영은 가장 깊은 곳의 마음의 처소를 의미한다.
혼은 영을 거하게 하는 다음의 처소를 의미한다.
육은 영혼을 거하게 하는 그 다음 처소를 의미한다.

11)하나님의 나라의 실존은 성령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로 왔으며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일했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가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이스라엘 안에 먼저 왔고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신약교회시대에 두 번째 임한 것이 오순절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실존은 성령이다.

12)장자의 전가 이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역할 이삭이 예수의 역할 엘리에셀이 성령의 역할로 나타난다.
이삭이 하나님의 역할 야곱은 예수의 역할과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는 12지파의 역할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역할 요셉은 예수의 역할과 모든 이방과 유대인을 구원하는 역할이다.
모세는 예수의 역할 다음에 여호수아가 예수의 역할 다음은 다윗이 예수의 역할로 나온다

13)세례의 이중성(홍해의 세례와 광야의 세례)

홍해는 중생의 세례로 그리스도와 죽고 살아난 것을 의미한다.(영적으로 원죄에서 해방)
이렇게 홍해에서 중생된 자가 광야에서 죄를 사함 받는 일이 계속된다.(자범죄의 해결)
중생의 세례와 홍해의 세례이다. 단일한 세례에서 두 세례 이론으로 접근한 방법이다.

14)예수의 이중적인 신분(그의 사역에는 유대인과 사탄과 관계된 두 신분이 있다)

유대인으로 이방인을 위해서 걸어간 동시에 영적으로는 사탄과 싸우면서 일했다.
죽기 전 예수는 유대인의 신분으로써 육적인 왕으로 일한 것이다.(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써 영적인 사탄과 싸운 것이다.(사탄을 이기기 위해서)
예수는 이렇게 먼저 유대인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삭과 같이 출생하고 모세와 같이 출생하였으며 모세의 홍해세례와 같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 세례를 받으셨으며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것같이 오병이어로 사람들을 먹이셨으며 그리고 다윗과 같이 왕으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끝나는 것이 된 것이다.(예수의 예루살렘 예언)

동시에 예수는 처음부터 사탄과 싸운다. 사탄의 상징인 바로의 역할인 헤롯이 있었으며 그리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것 같이 예수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사탄으로 받으셨으며 그리고 모세가 바로를 이기기 위해서 10재앙으로 싸운 것같이 예수도 귀신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장자의 재앙과 같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영원한 장자로써 승리한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예수는 유대인의 신분이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왕으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구주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나타난다.

15)구약시대 여호와라는 성호는 신약시대에 와서 완전히 사라졌다.

구약시대 유일신의 이름인 여호와 대신 신약시대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로 새롭게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삼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신약시대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구약의 여호와가 사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16)원죄의 좌소는 육체 안에 해당된다.(원죄) 즉 영혼 안에 원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원죄는 물질도 영적인 존재도 아니다. 원죄는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경은 육체 안에 죄가 있다고 증거 한다. 육체는 유전적으로 죄를 지으려는 육체의 구조로 바뀌어버렸다. 그 아담의 씨를 가지고 온 모든 사람들은 육체가 그렇게 죄를 지으려는 육체를 가지고 오기에 태어나면서 죄를 지으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부모 안에서 죄악 중에 잉태되며 죄인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리고 살면서 그 원죄로 말미암아 자범죄를 짓는다.

17)아담은 처음부터 완전한 육체가 아닌 죽을 수 있는 육체였다.(부활의 육체가 아님)

죄가 들어오면 죽을 수 있는 육체로 왔다. 그리고 죄를 짓자 그는 죽음으로 달려간 것이다.
아담은 처음부터 죽는 육체로 창조 된 것보다 죽을 수 있는 육체로 창조되었다. 물론 두 가지 논리인 죽는 육체와 죽을 수 있는 육체 모두 학설과 같이 인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채택하였다.

(아담은 처음부터 땅에 속한 자였다)

*사탄 : 인간의 대결을 위한 창조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했어도 아담은 하늘에 속한 자가 처음부터 아니었다.
첫 사람 아담은 땅에서 창조된 땅에 속한 자였다.(예수만이 처음부터 하늘에 속한 자)

아담은 땅에 속하면서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길을 놓고 선택을 해야 되는 존재였다.
이 세상은 사탄이 있었기에 그 안에서 창조 된 사람은 사탄과 대결해야 하는 위치였다.

18)홍해는 중생으로 신앙의 출발이며 요단강은 장성된 자가 가나안에 침노하는 자이다.

신앙의 출발로 백성이 되었다. 그러나 새사람을 입는 광야의 과정이 있어야만 그가 천국(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고 성령의 열매(가나안 땅)를 맺는다. 이렇게 구원의 이중성이 있다.
먼저는 무조건 부름이라면 다음은 개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며 지켜야 되는 것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성도가 되었으나 거룩하게 되지 않으면 즉 새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증거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인 성도,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피조물 등은 중생으로 모두 다 경험할 수 있지만 새사람으로 입는 것 거룩함으로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믿음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개인의 소관이다.

성령은 도우신다. 그러나 성령을 쫓는 것은 개인의 것이며 성령은 역사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개인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일어나는 것이다. 참으로 개인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

19)주기도문은 성취되었다.

신약시대의 기도문이 아니다. 주기도문의 성취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는 그 나라가 오순절 날 성령의 임함으로 비로써 성취되었다. 그 다음구절은 성취된 것을 성도들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보아야 한다. 즉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신약시대 우리는 마태의 주기도문을 기도문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이미 오순절로 성취된 이후에 대한 공동고백의 성격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가 죽기 전에는 성취되지 않았던 주기도문의 내용이 부활 후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대로 성취된 것이다. 또 진행 중이다.

20)유대절기 중에서 무교절의 이중성(무교병을 먹는 날이 8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는 것과 다음에 무교병을 7일간 먹는 안식일부터 안식일까지 먹는 7일 무교절이 있다. 사실상 두 무교절로 구분된다. 유월절 무교절과 7일무교절로 구분된다. 니산월 14일(유월절=1일 무교절)과 다음날 니산월 15일부터 21일(7일 무교절)

21)예정론의 오류

칼빈은 예정을 예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 사실상 창조 안에 있는 계획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신약시대 사람의 구원은 그 계획이라는 예정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이 찾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관계와 시간의 파괴)

그러므로 예정은 창세전 예정이며 현재적 선택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면 예정은 예정대로 남게 되고 선택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선택이 모두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그리고 사람의 선택이 따라오게 된다.(예정대로)

22)불신자들은 현재 지옥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영혼으로 지옥에 들어갈 수 없다)

지옥은 죽은 자들이 영혼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육체와 영혼으로 들어간다.
불신자들은 현재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닌 음부에 있다.(성도는 낙원에)
불신자들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음부에 있었다. 지옥은 육체로 고통당하는 장소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육체와 영혼으로 던져지는 곳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불못이 지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미 지옥은 준비되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도 준비되고 있다.

23)세례요한 예수보다 왜 일찍 죽었어야 했는가?

세례요한은 예수를 위해서 철저히 희생한 것이다. 예비자의 삶을 살았다.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정치적으로 대항함으로 헤롯은 예수를 강하게 경계하지 않았다.
초기에 세례요한은 정치적으로 헤롯과 직접 대항했다면 예수는 종교적으로만 활동하였다.

24)성경적 교회정치인 유일한 안수의 원리

초대교회는 성직을 세울 때에 하늘에서 세운다는 의미로 안수해서 성직을 세웠다.
안수의 의미는 하늘에서 땅에 있는 교회 안에 성직을 개인적으로 세운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직이 교회정치의 출발이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교회 안에 여러 교사들을 두거나 혹은 각종 필요에 따라서 임시직들을 세우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다스림이 바로 성경적인 정치의 원리이다. 사도들은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닌 개인적으로 안수해서 세우는 성직을 교회에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은 안수해서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는 오늘날과 같은 의회정치와는 다른 것이다.

25)원죄는 육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원죄로 육체는 죄를 지으려는 육체로 나타난 것이다.

원죄의 출발은 아담으로 출발한다.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적인 곳에 영향을 주었다. 파괴의 모습이나 약육강식의 모습 등이 모두 원죄에 의해서 변형된 모습일 것이다.

처음 창조 된 곳은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다. 원죄가 들어온 이후로 원죄의 영향을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죄의 모습이 보이는 물질적 세계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육체도 영향을 받는다.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아담으로 오는 생육의 법칙에 의해서 죄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죄의 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죄의 종이 된 육체와 같다는 의미이다.

원죄가 있는 육체는 자범죄를 지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자범죄를 지음으로 타락하게 된다. 이와 같이 창조 된 세상은 원죄가 있는 곳이며 그 원죄는 우리의 육체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26)창조세계는 내세의 하늘나라와 현세라는 지상세계의 축소판이다.

지구의 하늘은 하늘나라의 모형이며 지구의 땅은 지상세계의 모형과 같다.
구름위의 세계는 지상세계를 넘어선 하늘 위의 내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름 아래는 지상세계의 공중이며 이 땅은 우리가 있는 땅과 같다. 이렇게 땅과 공중과 하늘의 세계라는 모습이 창조의 모습에서 축소판과 같이 나타난다.

태양은 마치 하늘과 땅에 비추이는 하나님의 빛과 같다. 그 빛이 비추면 어둠이 물러간다.
태양자체는 빛이다. 그 빛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어둠이 없다. 이것도 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태양과 같은 하늘 위에서 빛이 세상에 비추이고 있다. 죄가 있는 이 세상에 빛이 비추고 있는 것과 같다. 본래 지구는 하나의 땅이었다. 그런데 범죄로 말미암아 갈라져서 오늘날과 같은 오대양 육대주가 형성된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갈라진 세상을 의미한다.

27)중력에 의해서 시간과 공간이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변형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의해서 시간가 공간이 변형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은 무형이며 공간은 물질과 물질이 있는 사이를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공간과 시간이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변형에 의해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변형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시계를 두고서 속도를 측정하면 시간이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중력의 영향으로 시계라는 기계자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시간이라는 무형적인 것이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물질이 아니다.

28)구약과 신약의 명칭 사용으로 오해를 일으켰다.

구약은 이미 지나간 옛 언약으로 생각하였기에 도올은 구약성경이 이미 성취된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옛 언약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는 재림의 약속까지 포함되어있다. 또한 예언적이 의미로 약속되고 현재 성취되는 중이다. 특히 새 언약까지도 약속한 책이며 새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지금의 모습도 약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보다는 예수 오시기 전의 책과 예수 오신 이후의 책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 혹은 옛 언약 안에서 기록된 책과 새 언약 안에서 기록된 책으로 말할 수 있다.

29)예수의 죽음이 심판의 기준이 된다.(최초공개)

그리스도의 죽음은 신자들에게 유익하며 불신자들에는 심판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두에게 해당된다. 불신자이든 신자이든 부활한다.
그러나 신자들은 영생의 부활이며 불신자들에게는 영벌의 부활이 될 것이다.

약 2000년 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이 세상에서 죽은 자들이 그 때부터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나누어지는 시작이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음부와 낙원)
죽은 자들에 대해서 설명하면 신자는 현재 낙원에 불신자는 현재 음부에 있다.

30)[하나님] 대신 [신]이라는 호칭으로 바꿔야 한다.

하나님이라는 호칭에서 [-님]이라는 존칭의 사용은 한국 기독교가 임으로 만들었다.
본래 하나님은 헬라어로 데오스이다. 이는 [신]이라는 용어로 이해해야 한다.

마치 신님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용어사용은 헬라어 데오스와 전혀 다른 사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신]이라고 바꿔야 된다고 본다.

삼위일체 사상에 의해서 신을 하나님으로 바꾸고 거기에다 -님이라는 일인칭 존칭까지 항상 포함시켰다는 것은 성경을 왜곡한 첫 번째 사례이다.

이러한 사상의 근본은 한국의 문화에 맞추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이다.
선생을 선생님으로 부르거나 혹은 아버지를 아버님으로 부르는 존칭을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본다. 그 결과 성경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이해도 우리이 용법으로 상요하였다.

31)아브라함의 언약에는 두 언약이 있다.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옛 언약과 영적 이스라엘에 해당되는 새 언약이 포함된 언약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독자적인 언약이다.
그 언약에 의해서 두 언약이 나타난다.
첫 언약의 출발은 이삭으로 그리고 두 번째 언약의 출발은 예수로 출발한다.

지금은 새 언약의 시대이며 이는 아브라함의 언약(약속)이 성취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언약이 모두 지나간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언약만 지나갔다.

32)감독은 성도이면서 감독직 소유(이원론적 직분이해)

감독은 성도로써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며 직분으로써는 성도를 다스리는 것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감독은 감독으로써 성도를 다스린다. 동시에 감독도 교회의 성도임으로 성도를 섬기는 것이다. 어떻게 섬기는가? 그것은 성도를 다스림으로 성도를 섬기는 것이다.

성도를 섬긴다는 것은 감독의 직분자체가 성도들의 종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직분을 가진 성도가 그 직분의 권한으로 성도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성도를 섬기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감독에게 성도를 다스리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성도를 섬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감독이 같은 성도로써 성도를 섬기는 것은 종의 역할과 같다. 그러나 감독직이라는 하나님의 직분이 교인의 직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1)감독자는 직분으로써 다스림이 강조된다.(하나님의 종)
2)감독자는 모든 성도와 같은 성도이기에 성도들을 섬길 수 있는 것이다.(성도의 종)
3)그 섬기는 방법은 하나님의 직분을 잘 감당하므로 같은 성도로써 성도들을 섬긴다.

33)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중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냄을 의미
*성령으로 거듭난다=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의미

이렇게 물은 예수의 죽음을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중생으로 세상에서 믿기 시작한 자들에게 일어나는 초기 현상이다.

34)예수는 모든 육체를 대표해서 죽었다.

예수의 육체자체의 죽음은 모든 육체의 죽음을 대표한 육체자체의 죽음이다.
예수의 육체자체의 부활은 모든 육체의 부활을 대표한 육체자체의 부활이다.

예수가 모든 육체의 대표로써 세상에서 죽은 것이다.
모든 죄인 된 사람의 육체를 대표한 것이며 그 안에서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는다.

예수의 육체자체의 부활은 모든 사람의 육체를 대표로해서 살아났다.
예수의 부활로 모든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과 같이 모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심판이다.

예수는 영혼이 죽은 것이 아니다. 육체가 죽은 것이다.
육체로 죽으시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먼저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
모든 사람들 대표한 예수의 육체의 죽음은 모든 영혼을 심판하는 첫째부활을 이루게 된다.

그의 죽음으로 낙원과 음부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모든 사람의 육체를 살려서 심판하게 될 것이다.

35)로마서의 원죄에 대한 이해(최초내용)

*먼저 죄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적용시켰다.

1)원죄
2)우발죄
3)자범죄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되는 내용은 육체의 원죄와 혼의 우발죄와 영의 자범죄로 구분한다.
그리고 중생으로 원죄와 분리된 상태가 된다.(의와 죄)

신자가 죽으면 원죄에서 벗어나고 자범죄는 세상에서 용서받았기에 낙원에 오른다.
불신자가 죽으면 원죄에서 벗어나지만 자범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음부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자범죄를 사함 받은 자들은 영생을 그렇지 못한 자는 영벌이 된다.

36)예수의 속죄에 대한 이해(최초)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적용되는 속죄

1)십자가 고초: 자범죄를 위한 것
2)육체자체의 죽음: 모든 육체를 심판한 죽음(원죄의 심판)
3)육체자체의 부활: 모든 자들을 심판하기위한 부활(최후심판)

이렇게 3가지로 적용하였다.

37)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아담의 역사도 그렇다.
가인이 먼저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아벨을 인정했으며 아벨이 죽자 나중에 태어난 셋을 인정한다. 가인은 사탄과 같은 위치라면 아벨은 예수의 희생을 셋을 예수의 부활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역사도 그렇다.
먼저는 이스마엘이 장자로 태어나지만 하나님은 이삭을 선택한다.

*이삭의 역사도 그렇다.
이삭의 아들 장자 애서가 먼저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애서대신 야곱을 선택한다.

*야곱도의 역사도 그렇다.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먼저 형제들이 인정되지만 버림받은 요셉이 후에 총리가 된다.

*모세의 역사도 그렇다.
바로의 아들이 장자이지만(장자 재앙으로 죽음) 하나님은 모세를 선택하여 일한다.

*다윗의 역사도 그렇다.
먼저는 형들이 인정되지만 나중 된 다윗을 하나님은 선택해서 왕으로 등극시킨다.
사울 왕이 먼저 되지만 하나님은 나중 된 다윗을 왕으로 세운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그렇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먼저 선택했지만 하나님은 나중 된 이방인들도 구원한다.

*예수의 역사도 그렇다.
아담이 먼저이고 사탄이 먼저였다.
나중에 온 예수는 아담대신 모든 사람의 대표로 사탄과 싸운 것이다. 사탄을 이기고 왕권을 얻었다.

*예수의 구원이 이스라엘 중동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들이 버림을 받고 동서지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서방이 다시 하나님을 등지자 구원의 복음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도 그렇다. 북한이 먼저 구원의 기지였지만 일제 신사참배를 회개하지 않음으로 구원의 기지가 남한으로 넘어온 것이다. 우리는 이제 복음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38)관계적이고 수직적인 예배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는 관계에서 수직적인 예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땅에서 성령으로 우리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 모습은 수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평적인 모습이 아닌 수직적인 예배의 모습은 하늘을 향한다.

39)하나님 나라와 성령 그리고 왕과 교회

하나님 나라는 성부의 나라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라의 소유주가 되신다.

땅에서는 성령이 임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의해서 백성으로 땅에서 부름을 받았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의 실존적인 통치이다.
그 나라에 의해서 교회가 통치를 받는다.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성부이며 그 나라의 실존적 통치는 성령이시다.
그 나라의 왕은 그리스도이며 그 나라의 백성은 성도이다.

하나님과 성령은 분리 되지 않고 연결된다.
성부는 성령으로 땅에 자신의 나라를 세운다.

하나님 나라와 왕과 교회는 분리해서 이해된다.
예수는 나라가 아닌 나라의 왕이며 교회도 나라가 아닌 나라의 백성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령에 의해서 나라가 확장된다.
그 나라(성령)와 그 나라의 왕과 그 나라의 백성은 성부의 소유된 나라와 구성이다.

40)삼위일체와 양성론도 개혁되어야 한다.

일체신학사상에서 관계적인 삼위로 이해해야한다.
성부는 하나님이시며 성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성부는 자기 영을 성자에게 주셨고 성자는 그 아버지의 영을 우리에게도 허락한 것이다.

성부는 죽지 않으시고 변함이 없는 본체자체이시다.
모든 영광을 홀로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가 용서와 심판주가 되신다.
육신으로 오기 전 성자는 성부 품안에 성자가 포함되어있었다. 그러다가 성령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게 분리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삼위로 나타난 것이다.

창세전에 삼위는 영으로 존재하였다.
물질이 아닌 혼도 아닌 영적인 존재이다.
성부도 영으로 성자도 영으로 성령도 영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성자라는 영은 혼과 육체라는 육신을 입고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다.

예수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그 영인 말씀이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것이다.

http://cafe.daum.net/hosannakim  (2007년 6월 24일 김인찬 목사)

글쓴이

김인찬

날짜

2007-06-25 16: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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