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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의 메시지



예레미야 36장 1-32장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듣는 자들이 좋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사도 요한처럼 분명히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듣던지 아니 듣던지, 순종하든지 불순종하든지 심판의 말씀을 전해야만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요시야 왕 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받았는데 그 말씀을 기록하라고 한 것은 요시야의 아들이 왕이 된 여호야김 4년 때부터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야김 4년 때는 B.C 605년으로 그 때는 바벨론이 남유다를 첫번째 침략했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의 말씀을 기록하라는 것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리 심판을 말해도 듣지 않고 믿지 아니하기 때문에

      기록해서 많은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함이었고,

셋째는 심판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말씀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기록된 책이 곧 요한 계시록입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도 여러분!

남유다 백성들처럼 심판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이 되지 말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번째. 심판의 말씀을 기록하라.



(렘36:1-8)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5)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6)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

 

예레미야 1장 2절에 보면

요시야 왕 13년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31년을 통치했으니깐 예레미야 선지자는 18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었고, 또 여호야김이 왕이 된 후 4년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깐 22년 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심판의 예언의 말씀을 이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2절 끝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이렇게 기록케 하신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3절을 주목해 보시길 바랍니다.

(렘36: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이 때가 언제라고 했습니까? 바벨론 침략이 처음 이루어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때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다면 바벨론을 통해서 작정한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이제까지 받은 모든 예언을 기록하였는데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 있었으므로 예레미야 사역을 도와주고 있는 서기관 바룩에게 받아쓰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록한 그 말씀을 금식일에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서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선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7절에서 또 언급합니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백성들이 심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선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룩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명령한 대로 하나님 성전에 나가 심판의 모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당해 금식하고자 성전에 모인 백성들을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다가 매 맞고 감옥이 갇혔는데 바룩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심판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용기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도 마지막 때에 있을 세상 끝 날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확고한 신념과 용기가 없다면 전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 역시 남유다 백성들처럼 심판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계시록을 사도 요한에게 기록하여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계1:11)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사도 요한 당시에 일곱 교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한 다섯 교회에 주어진 공통적인 말씀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판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외면한 결과 그들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예언서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예언서입니다.

예언서는 이중, 삼중 계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주어진 심판의 메시지는

오늘날 이 시대 교회들에게도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절대로 상징이나 영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장차 되어질 일들을 기록한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계시록에는 “장차” 라는 말씀이 9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계시록 1장 1절이 어떻게 시작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기록한 심판의 예언의 말씀이 영적인 일이었습니까? 어떤 상징이었습니까? 반드시 남유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였듯이 계시록도 마지막 때에 반드시 속히 일어날 심판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도 안타깝게도 남유다 시대처럼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이 기록된 말씀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교회들이 진실로 예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라면 마지막 때에 되어질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라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이길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에 있는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주어진 말씀은 “이기는 자” 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가볍게 들었던 남유다 백성들과 계시록에 다섯 교회처럼 되지 마시고 날마다 심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심판의 말씀을 낭독하라.



    (렘36:9-26)

(9)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 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예레미야 선지자와 바룩이 하나님 심판의 말씀의 책을 완성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책이 완성될 때 쯤에 여호야김 왕은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였습니다.



6절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획했던 데로 아주 좋은 날에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성전에 금식일 날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룩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낭독하였는데 본문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들을 자들의 모습이 두 가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첫째 모습은 심판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며 믿는 자들이 있었고 둘째 모습은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말씀을 찢어 불살랐고,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잡으라고 까지 하며 패역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이러한 동일한 두 가지 모습이 이 시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이 심판의 말씀 앞에

19절까지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룩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낭독하였습니다. 서기관 그마랴의 방은 성전의 새문 어귀 곁에 있었는데 그곳은 일전에 예레미야가 끌려가서 재판을 받은 곳으로 성전의 동편 문이 있는 곳이며, 넓은 뜰이 있는 곳으로 종종 집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마랴의 방은 성전 윗 뜰에 있었기 때문에 바룩은 새문 안쪽의 넓은 마당 뜰에 금식하려고 모여 있던 백성들을 내려다 보면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위치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서기관 그마랴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마랴는 여호야김 왕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두루마리 책을 태우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했던 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마랴의 형제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구출해준 적이 있었고(렘26:24) 그마랴의 부친인 사반은 요시야 왕 때 서기관으로서 요시야 왕의 종교 개혁에 예레미야와 함께 참여했던 자였습니다.



또한 11절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나오는데 미가야는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왕궁에 내려가서 모든 고관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13절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미가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너무나도 두렵고 놀라운 사실을 전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미가야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은 고관들도 너무 믿기지 않아서 바룩을 불러서 다시 심판의 메시지를 낭독하게 하였습니다.



고관들은 너무 두렵고 놀라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이 말씀을 기록케 되었는지 물어보았고 이 두렵고 놀라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관들은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함께 숨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어떤 마음을 갖습니까? 그마랴와 미가야처럼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믿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나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레미야와 바룩과 미가야처럼 메시지를 들었다면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심판의 메시지를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신 것은 나만 듣고 깨달으라고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나를 깨닫게 하신 것은 그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고 나를 깨닫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심판의 메시지를 무지한 자들이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해도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은 깨닫지 못하지만, 선포하지 아니하면 소수의 무리마져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바룩이 하나님의 성전 뜰에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할 때 백성들은 금식을 하기 위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여호야김 왕이 선포한 금식일을 지키기 위해 모였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바룩이 낭독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두렵고 놀라워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두려워하고 놀라는 자들은 소수의 무리였습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깨달은 자들은 소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노아 때도 그러했고, 소돔과 고모라 때도 그러했고, 이스라엘이 심판받을 때도 그러했듯이 마지막 때에도 소수의 무리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깨닫고 준비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0절부터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패역한 모습을 보인 자 들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자가 여호야김 왕이었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심판의 메시지를 기록한 두루마리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양피로 된 두루마리 책을 면도칼로 베어서 화로 불 속에 던져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24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왕과 신하들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회개하지도 아니했다고 하였습니다. 25절도 주목해 보세요. 그마랴와 몇 명의 신하들이 두루마리 책을 태우는 것을 막아보았지만 왕은 듣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숨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마지막 때에 대한 말씀만 하면 유난히 분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성경의 예언인 것을...



예수님도 마태복음 24장 48-49절에서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자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동료들을 때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더 슬픈 일입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자들입니다.

재림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 재림은 멀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더디 오리라” 이들의 정체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글쓴이

묵상

날짜

2011-10-27 10: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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