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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한 이야기가 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두 아들, 맏아들과 탕자의 이야기...

    큰 아들은 모범생, 작은 아들은 말썽꾸러기....



    우리는 어느 아들을 원하는가?

    모범생 아들이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좀 이해 안되는 논리로 소개하고 있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다 만나는

    아버지의 감동적인 스토리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바로 맏아들 같은 아들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도덕적인 방탕을 미화시키거나 조장하자는 얘기인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보자면 돌아오자 잔치를 베푼 문제...

    좀 이해하기 어렵다. 계산이 좀 안 맞는다.



    



    그렇게까지 잔치를 베풀고 해야 하는가?

    돌아오는 사람을 받아주신다 정도가 아니다.

    뉘앙스가 첫째아들은 안되고, 둘째아들이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탕자의 상태가 돼봐야 알 수 있는 일인데...




    우리는 여기서

    큰 아들의 심정...

    둘째아들의 심정...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전제하고 이 이야기를 접해야 한다.

    즉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사고의 전환...




    높은데 계신 것이 아니라 낮은데 계신 하나님...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과 함께 죄인처럼 사신 예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탕자의 이야기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탕자의 심정을 갖게 되면 성경이 보이게 된다.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먼저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부분 우리는 나 자신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산다.

    어느 날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나면, 내 자신의 상태인 무자격자 의식을 알게 된다.

    그러면 성경이 보인다.



    무자격자 의식이 무엇인가?

    성경에서 요구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신의 8가지 성품이 가능케 하는 시작점이다.

    8복의 상태가 되는 시작점이다.

    이 무자격자 의식에 대한 자각 없이는 아직 믿음을 말하기가 이르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적인 탕자를 경험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직, 간접적인 동기로 인해 이 심정을 원하고 소원하면 은혜로 가능해 진다.

    세상 소원, 세상 능력만을 구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었던 것이다.

    탕자의 마음...

    온유와 겸손의 진실한 마음...

    이 탕자의 마음이기를 소원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면전에 뵈옵고, 그 분의 사랑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다.



   



    탕자의 심정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살게 되면...



    모두가 경험을 해야 한다면 십자가의 은혜가 헛되고 만다.

    어쩌면 각자가 걸어온 길이 탕자의 심정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이 탕자의 심정, 무자격자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울면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상태까지 가야 한다.

    이 상태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모범생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교만한 아들이 되지 말고,

    세리 같은 기도, 탕자 같은 기도를 드리는 심정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다.

    가난한 상태이든, 부요한 상태이든, 건강한 상태이든,

    병든 상태이든 중요한 것은 이 마음자세이어야 한다.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가능할까?



    아니 꼭 그렇게 살아야 할까?

    꼭 그렇게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 행복한 사람, 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삶속에 열매가 없는 이유는?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묵상

날짜

2011-11-16 11: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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