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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생활은 성경적인가>

저는 정식으로 개혁교단에서 안수받은 목사입니다.

[기독교 판매 성경적으로 운영되는가]=두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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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헌금이 대부분 소멸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교회의 각종 장사행위로 말미암는다. 교회의 장사행위는 이제 공적인 활동이 되어버렸다. 돈으로 운영되는 교회는 물건을 사고 파는 매매행위로 교회헌금을 물 쓰듯이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속화된 증거는 교회의 활동인데 그 안에서 종교의 활동이라고 주장하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이러한 비성경적인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교회는 교회의 비품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헌금을 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용은 모든 교회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되는 것이 되었다. 교회 강대상, 엠프. 피아노. 의자, 인테리어 등등 교회는 현대교회에 맞게 온갖 것들을 갖추며 치장하고 있다. 이렇게 나타나는 비용은 헌금의 비중에서 절반을 차지할 정도이다.(개인 추산) 또한 소모품과 같이 해마다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 기생하는 장사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상의 다른 종교와 같이 교회의 온갖 비품을 준비하고 교회에 판매하고 있다.

책, 악세사리, 기념품, 교회의 비품 등 온갖 것들을 헌금으로 또는 성도들의 교회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십자가까지 만들어서 팔아먹는 시대이다. 교회의 종 탑은 교회 수만큼 제작하고 간판도 그렇게 나타난다. 이러한 무리한 투자는 교회가 선교할 수 있는 모든 재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중요한 중복 투자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뿐 아니라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기독교 인기가수들의 음악을 비싼 비용으로 사게 된 것이고 그들은 이렇게 교회 안에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교회의 음악을 현금 주고 산다는 자체가 문제이지만 찬송가라고 하면서 돈으로 거래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찬송가를 현금 받고 팔 수 있는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한 행위를 시디나 테이프에 담아서 판매한다. 인기 있는 것은 더 비싸게 판매하고 인기가 없는 것은 값싸게 판매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논리는 사람의 행위가 돈으로 평가되는 것이며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유행이듯이 헌금과 별도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듣는 것보다 식량이 없어서 복음도 듣지 못하는 곳에 쓰여 질 것이 우리의 향락적인 기독교 문화로 그 비전을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제안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찬송과 복음 송은 돈으로 판매될 수 없다.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성호가 들어가고 삼위가 들어가면 거룩한 용어들이 사용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돈으로 찬송가를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모든 찬송가에 특허권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얼마나 큰 액수를 요구하겠는가??

심지어 오늘날에는 성경도 팔고 있는 시대이다.
성경이 판매된다는 것은 성도들이 좀 더 귀한 것을 외모로 판단하는 시대이다.
기독교 서점들은 이러한 외적인 모양을 잘 만들고 고가로 판매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비용으로 필요 없는 성경책을 기독교 장사꾼들에게서 사고 있는지 아는가??

교회의 활동은 안과 밖이 구분되지만 사실상 기독교 모든 행위들은 교회의 활동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사고 파는 매매행위는 완전히 불법이며 오직 믿음으로 서로 통용하는 것이 교회 안에서는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그래서 성경은 빚도 지지 말고 또 빌려주지도 말고 그냥 주라는 주님의 명령이 분명하게 윤리로 남아 있다. 즉 서로 하나의 식구들인데 금전으로 거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를 등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실 목사도 교회의 헌금으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 외에 교회의 모든 사역자, 사찰, 교회의 직원, 교회의 유치원, 교회의 목사, 심지어는 목사의 기사 등이다. 이들은 이렇게 헌금으로 먹고살고 있는 적극적으로 교회 안에 있는 직원이다. 간접적으로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은 앞서 말한 장사꾼들이다. 기독교 관계된 모든 기관들 점포 등이다.(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겠음)

이들 간접적인 자들 중에도 교회만으로 먹고사는 상업이 있는가 하면 좀 약한 것도 있다.
이렇게 교회와 공생관계에 있는 이들은 교회의 성도로써 교회의 헌금을 도로 찾아가는 자들이 된 것이다. 강대상도 천만 원 이상에서 시작해서 값싼 몇 만원까지 있다. 언제부터 강대상이 그리 비싼 것이 되었는가??

구약의 사상대로 성물이라고 주장하고 교회에서 공식적인 부흥회 등으로 반강제적으로 걷어서 교회의 비품들을 준비한 것이 한국교회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들은 이제 모든 교회마다 의례히 꼭 현금 주고 사야 되는 것이 된 것이다. 포장된 기독교는 이렇게 외모에 치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돌아다니는 책상이나 농 짝을 놓고 강대상으로 사용하여도 설교의 질이나 말씀의 파워가 약해진다면 현금을 주고 비싸게 사도 상관없다.

그러나 말씀이 이러한 외모로 달라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외모를 치장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거짓된 자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나아가는 헌금으로 정작 생명을 살리는 선교는 물 건너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문화인 기독교는 이제 검소한 문화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은 단돈 100원도 허비되길 원하시지 않고 선교로 쓰여지길 원하신다. 이방종교들이 자신들의 기구들을 좋은 것으로 사고 파는 행위가 기독교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비품들은 이렇게 헌금을 사장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제안은 교회의 의자를 과감히 없애고 공동체의 모습을 가져야한다. 물론 노약자나 환자를 위해서 몇 개는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즉 예배가 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외적으로도 서서 경배하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야 되지 않겠는가? 의자가 없다는 것은 공간의 활동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만찬의 식사도 그 안에서 함께 할 수 있고 찬양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엎드려서 경배도 할 수 있으며 성도들이 좌우로 교제하는 것이 쉬워진다.

생각해보면 의자는 사실 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도원에서 왜 은혜를 수 없이 받고 오는가? 기도원에 의자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기도원은 모든 성도들이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게 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물론 다른 목적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은혜를 받고 찬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예배당과 기도원이 구분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예배당 신성화는 주일에 몇 번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재로 거액의 헌금을 들여서 지어진 예배당이 대부분 주일용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얼마나 성도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것인데 구약의 성전 개념으로 알고 교회의 예배당을 걸어 잠그고 예배만 드리라는 것은 유대 종교적인 율법주의 성전개념과 같은 사상이다. 심지어 어느 교회는 예배당 안에서 드럼도 못 치게 한다고 들었다. 완전히 구약의 성전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충성인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자의 영적인 공간이 이렇게 사람들의 율법주의로 철저히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유전으로 교회당이 운영되면 세상의 법당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내적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이 외적인 개혁인가? 내적인 영적 활동이 제약되지 않도록 외적인 장애물을 과감히 청산하려는 의지이다.

의자도 소모품이다. 다음에 또 사야 된다면 사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 모든 교회들이 예배당에 성도들이 차지고 않는 의자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자주 사는 수고로 헌금이 사라지게 말자는 것이다.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이제는 고난보다 편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성도들은 주차장이 있고 거대한 교회와 비싼 고가의 장식과 인테리어 첨단과학의 도구들이 있는 교회로 대부분 몰리고 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헌금했으니 그 만큼 누리자는 것은 헌금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 되물어야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누구의 것인가? 하나님의 것을 도로 자신들의 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사용되는데 먼저 극단적인 빈곤층과 그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라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교회들이 고가의 비품을 준비하는데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로 말미암아 열악한 개척교회와 지 교회들은 어떻게든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따라가려고 있는 힘껏 영상시스템 등을 도입한다. 그래도 대형교회의 물량작전에 그들은 힘없는 점포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교회들이 마련된 비품들은 사실상 거의 헌금으로 마련된 것이다. 개혁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것을 없애고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당 세우는 것을 중단하고 목사의 배출을 중단하고 교회가 하나 된다면 이렇게 불필요한 비품들의 경비가 선교로 쓰여 질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수만 명의 교인들이 목사가 되기 위해서 경비를 낭비하거나 또는 수만 교회가 경쟁하는 것으로 교회의 비품이 낭비되는 것을 막는다면 선교는 실제로 엄청난 파워를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 들어가는 큰 경비는 헌금이 되고 수많은 목사에게 평생 동안 주어지는 사례는 선교비로 쓰여 질 것이다. 교회가 하나 되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역에 4개의 교회만 있어야 되는데 400개의 교회가 있다고 가정하자. 아니 이것이 현실이다. 4개의 교회에는 4개의 피아노만 있어도 되는데 400개의 피아노가 있어야 된다. 지역으로 모이면 차 없이도 갈 수 있는데(과학적인 지역분할은 그 만 한 거리가 된다) 400개의 교회가 모든 차를 운행하고 있다.(약 500대 정도 그 이상일수 도 있다)

이 경비 만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400개의 교회가 있다면 400명의 목사와 400명의 부목사(전도사)와 기타 관계자들에게 사례를 평생 주고 생계도 책임지고 사택도 제공해야 된다. 그리고 4개의 교회는 400개의 교회와 비교할 때 교회의 비품을 4개만 구입해고 되는데 400개를 구입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라 400개의 교회 중 예배당과 주차장의 확보 등이다. 강대상 4개만 있어도 되는데 400개의 강대상이 있어야 된다.

위에서 말한 것은 한국교회 전체가 아닌 일개 시를 기준으로 본 것이다(약 40만명 정도로 개인추정 그리고 기도원이나 기타 교회의 각종 기관들을 제외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전체를 본다면 얼마나 어마어마한 액수가 되겠는가?? 헌금이 사장되는 약 80%의 헌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개혁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시가 통일된다면 지금의 한국교회 전체 선교비보다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개혁에 목사들이 먼저 나서서 앞장서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교회의 장사행위 중에는 공식적으로 교회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교회의 유치원들이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이상한 교회의 모습니다. 일찍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 차이도 큰 교회는 우수한 선생과 시설로 값나가는 유치원이라면 개척교회가 생계를 위해서 운영하는 유치원은 열악하고 그 값도 저렴하다. 이렇게 차등적인 운영은 돈으로 좋은 교육을 교회에서 받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돈이 없어서 다니지도 못하고 있는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묻고 싶다. 교회가 돈을 주고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인가?? 누가 그렇게 불법으로 교회를 운영하라고 가르쳤는가?? 참으로 이상한 교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무엇인지 전혀 망각하는 것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돈을 걷어내고 교회에 직원을 먹이고 목사와 기타 교회에 관계된 자들이 그 몫을 챙기게 된 것이다. 이뿐인가? 심지어 교회가 공식적으로 장사하는 행위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교회의 여전도회에서 교인에게 물건을 파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완전히 성경을 벗어난 불법적인 운영이다. 교회에서 바자회를 운영해서 수입으로 교회의 일을 한다는 어리석은 자들이 된 것이다. 도저히 용납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 한국교회에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뿐만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회비를 걷어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교회가 헌금을 회비식으로 걷어내는 것도 큰 문제인데 헌금이 아닌 정기 회비를 걷어내는 행위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교회가 그들의 것이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심지어는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곳에서 회비를 받고 가르치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이러한 행위는 시정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면서 돈을 받고 가르치는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인터넷으로 운영되는 성경공부를 인터넷에 전면 공개해야 된다.(크로스웨이, 두란노, 밷델성서, 3927성경연구, 프립셉트 등등) 그래서 교회들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교회 안에 있는 그 어떤 지식도 자신의 것이 아니며 어떤 것도 교회에서 사유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유화한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큰 부자가 되겠는가?? 성령으로 조명하고 또 성경이라는 절대적인 유일한 말씀을 현금 주고 팔았다면 교인들은 모두 거지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값지고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는 이유로 모두 빚쟁이가 되었을 것이다.

성경기관에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교회의 성도이지 기관의 성도가 아니다. 교회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것을 모든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 교회생활의 대 원리이다. 이렇게 모든 성경공부기관들의 지식과 가르침이 인터넷 영상으로 무상 보급된다면 한국교회는 엄청난 말씀의 꼴로 인도 될 것이다. 대부분의 성경연구 인터넷을 목사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교회에서 지원하면 가능하다)

교회가 목사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목사들은 자신의 기발한 지식과 성경연구를 아낌없이 공개하면 모든 지 교회들은 인터넷으로 그 기관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언제든지 활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장벽이 없고 경계가 없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한 가족이다. 한 가족이 돈을 주고 매수하고 돈으로 지식을 팔아서야 되겠는가?? 실재로 성경공부 한번 가려면 시간과 경비가 부담된다.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목사들은 자유롭게 수준 높은 성경의 지식을 습득하고 그리고 자신의 교회에서 성도들을 양육할 것이다.

신학교의 교육도 사실 전면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학은 교수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신학의 교육이 인터넷으로 보급된다면 충분히 모든 목사와 관심 있는 자들이 쉽게 말씀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학교라는 교정을 만들어놓고 지식을 사고 파는 행위는 본래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이 교수이며 목사이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무인가가 성경적이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지 세상의 학교로 만드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지식 자들의 지식을 미봉 하게 할 필요가 없다. 공개하여서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되어야 한다. 얼마나 귀한 지식인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교회에 만연하는 향락과 같은 프로그램과 잠자는 개인과 단체의 싸이트가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프로그램이 인터넷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가?
설교에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단골로 나오는 것은 얼마나 상업적으로 운영되는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조금 외적인 질이 떨어져도 내적인 내용이 좋다면 돈으로 운영하는 원리를 포기해야 된다. 성경 어디에서 교회에 기독교 방송 사업과 같은 돈으로 운영하는 기업이 있었는가?

설교 한편에 약 천만 원 들어간다고 들었다.(소문?) 누가 나서서 설교하겠는가?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들과 인기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오고 또 나온다. 도대체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이 정도인가? 설교의 수준은 질이 낮고 복음이 아닌 이상한 것을 전하는 설교들이 상당하다. 오히려 요즘 신학생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보니 강력한 복음의 무기로 사용할 TV방송도 이렇게 상업적인 것에 의해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에도 과거 미국이 부흥사 디엘 무디와 같이 불신자들에게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방송에 나오지도 못하고 숨어있어야 되는 지경이다. 상업주의 방송은 복음을 알리는 본래의 목적이 아닌 돈 있는 사람들의 잔치가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복음방송이 아닌 자랑하는 방송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방송 프로들도 복음을 전하는 목적에서 한 참 벗어나 자기교회와 목사와 성도와 교회의 예배모습을 자랑하는 프로가 있는가 하면 찬양이라고 하면서 음악회를 내보내는 것이나 자신들의 실력을 드러내는 프로가 대부분이다.(음악회는 찬송이 아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숨어서 일하면 주께서 갚으신다는 것이 성경이다)

이렇게 방송은 먼저 복음 전파용으로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왜인가? 방송도 하나님의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복음방송을 보고 듣고 한 영혼이 주님께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 드린 찬송과 찬양을 왜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들이 주프로그램이 되었는가? 이미 하나님께서 받으신 찬송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찬송자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재로 콘서트라고 명명하는 음악프로는 예배도 아니고 찬양도 아닌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세속화된 문화의 성격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다.(청소년 문화) 은혜찬양은 자기 교회에서 밤새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복음송을 들려주고 사람들에게 귀한 영혼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은 찬송이 아니다.

즉 찬송은 들려주는 목적이 아닌 드리는 목적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성경의 상식이다. 오늘날 방송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까운 것이다.

사람들의 행위를 드러내는 방송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을 들려주는 방송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도들이 TV복음방송을 각자의 위치에서 즉 개인직장에서 혹은 식당이나 어디에서든지 틀어놓게 되면 불신자들이 복음의 방송을 듣고 회개하도록 하는 것이 복음방송의 일이다. 물론 성도들도 복음으로 배우고 은혜를 얻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기독교 TV방송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신학교수들과 목사들에게 공개설문조사를 시행하여서 정말로 필요한 설교자가 방송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공개투표) 그러면 이 나라는 복음의 불길이 강력하게 타오르게 될 것이다.

글쓴이

김인찬 목사

날짜

2005-01-17 20: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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